11월의지아키

JOON

"우리 만난지 얼마나 됐지?"
"아마, 4-5년전?"
"그렇게나 오래됐어? 더 반갑네"

학부랑 이제 저 석사까지 6년 정도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에서 석사 유학을 끝내고 바로 취직을 해서, 지금은 미국에서 설계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네, 한국에서 석사를 하고 또 미국에서 유학을 하셨어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원래는 한국에서 학사 졸업하고 대형 설계사무소 가려고 했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학교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교수님이 학석사라는게 있다면서 꼬시는거에요. 1년만에 석사를 딸 수가 있다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학석사를 하게됐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석사는 연구 논문을 보통 쓰잖아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건 설계고 디자인이고, 그림을 그리고 공간을 만드는 건데 생각한 거랑 달랐던거죠. 논문을 읽고 분석을 하고, 그런 연구자의 삶이 잘 맞지 않았어요.

그렇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디자인보다는 연구에 조금 더 치중한 거 같아요.

그런데 다행인 거는 이 석사 기간 동안에 미국과 영국을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외국에서 다른 학생들이 마스터과정을 하는거 보니까 어? 내가 하고 싶은건 저런건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연구 논문으로 너무 지쳐있기도 했고요.

영국과 미국 다 갔었는데, 왜 미국이 더 끌렸나요?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그떄 브렉시트도 있었고, 건축뿐만아니라 좀 전반적인 경제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선택하긴 했어요.

그랬군요. 그러면 미국에서 석사를 하면서 기대했던 건 충족이 되었나요?

제가 형태적인 건축에 관심이 많아요. 조금 얇게 얘기하면 파사드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고요. 제가 간 학교가 형태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진보적으로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제 포트폴리오도 제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많이 변했죠.

제가 알기로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유학 준비하던 포트폴리오에서 봤던 기억이 살짝나네요.

한국이랑 제가 1:1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미국이 좀 더 열려있는거 같아요. 한국은 조금 다른 형태, 다른 방법론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느낌?

어느정도 동의해요. 그러면 유학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한국 학교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빡세게 준비했어요. 처음 6-7개월은 영어 공부만 하고 그 이후에 2-3개월 포트폴리오랑, 레주메, 스테이트먼트 정리 및 작성을 하고요.

저는 좀 핑계긴 한데, 영어에 자신이 많이 없어서 유학을 시도조차 안해본 것도 있거든요. 영어는 원래부터 잘 했었나요?

영어는 아직도 자신이 없어요. 아직도 버벅거릴 때 많죠. 갈 땐 점수만 맞추자라는 생각으로 갔고, 유창해지는건 가서 부딪히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왜냐면 미국에서는 정말 제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는데 영어 때문에 못 가면 내가 너무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영어는 정말 핑계 중에 하나인거 같아요. 그럼 지금은 취업을 한 상태죠? 시애틀에서. 어느정도 됐어요?

작년에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ㅇ르 해서 지금 약 1년 조금 넘었어요.

회사 크기가 어느정도죠? 1년이여도 경험이 다다르니까. 어떤 일 하고있어요?

헬스케어 병원을 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병원은 아니고 정신적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병원이기 때문에 일반 병원을 설계하는 것보다는 좀 더 한층 더 강화된 그런 요구 사항들이 많아요. 저는 입면 부분에 대한 디테일을 많이 하는데, 이게 멘탈헬스를 다루는 건물이다보니까, 사람들이 타고 올라갈 수 있냐 없냐, 이런 것에 대한 코드가 많더라고요. 이런건 좀 신기했어요. 이 일이 지금 CD 50% 정도 한 상태에요.
그리고 제가 다니는 회사가 급성장을 했어요. 그래서 공간을 옮기게 됐는데, 옮기는 공간의 인테리어도 하고 있어요. 파라메트릭한 오브제가 리셉션이나 이런 공간에 있으면 좋겠다. 해서 서브로 하고 있죠. 메인 프로젝트는 병원이고요.
회사 규모는 50명 정도 돼요. 그런데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니까 다른 회사랑 협업을 하고 있어요.

재밌을 거 같아요. 병원도 쉽게 할 수 있는 프로젝트 프로그램은 아닌 거 같아요.

아 그리고 층수가 낮아요. 부지가 크니까 중정도 많고 공원도 많고 그래요. 랜드스케이프하는 사무실이랑 그래서 협업을 많이 하고 있죠. 저희 회사가 다국적 기업이다 보니까 미국 내에서도 브랜치가 한 12개 정도 있어요.

브랜치가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지점 같은거죠?

아 네그렇죠. 어디어디 샌프란시스코점, LA점, 그런거에요. 저희는 시애틀 오피스인데, 주로 샌프란시스코 오피스랑 일을 많이 해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에서 일하면 다른 사무소들이랑 협업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다른 분야가 아니라 건축 디자인에서도요.

미국에서 일하는 삶은 어때요? 아무래도 미디어에 노출된 모습은 워라밸이 좋잖아요?

아 그렇죠. 저는 9시 정도까지 출근을 하고, 퇴근은 5시쯤 해요. 바쁘면 집에가서 초과 근무로 야근을 하긴 하고요. 아 그리고 화-목만 회사로 출근을 하고, 월,금은 재택으로 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도 좋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굉장히 잘 나누는데, 저랑 그런 부분은 잘 맞아서 좋아요.
그리고 미국 회사는 거의 래빗만 써요. 캐드는 처음에 레빗에 심어주는 용도로만 쓰고, 그 외로는 안해요. 다큐멘테이션을 다 레빗 프린팅으로 하거든요. 레빗이 모델링이 참 짜증나긴 하는데, 또 굉장히 파워풀한 툴이기 때문에 안쓸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저희 회사같은 경우에는 스케치업을 쓰지 않아요. 라이노랑, 그래스하퍼, 그리고 또 레빗이랑 연동되는 다른 것들을 많이 써요.

한국에서 사실 레빗을 못 쓰는 이유 중에 하나가 건축에선 하더라도, 기계,전기 같은 협력업체도 다 해야하는데, 아직 그게 힘들다 그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네, 여긴 MEP도 다 레빗을 써요. 그러니까 레빗이 센트럴 파일이 있으면 다 거기에 접속해서 하니까, 뭔가 안맞는게 있으면 다이렉트로 다 연락을 해서 수정을 할 수 있는거죠. 간섭이 일어난다거나 그런거요.

그걸 3d로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거 같아요. 동시에 작업하는 것도 그렇고요. 저도 경험이 별로 없지만, 제대로 체크를 못해서 시공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적이 꽤 많아요. 그런데 그걸 미연에 어느정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니까, 좋은거죠. 한국에서도 레빗을 썼었나요?

가서 배웠어요. 학교에서도 딱히 하지 않고, 실무하면서 배웠어요.

한국에서도 점점 지양되긴 하지만, 회식문화라는게 있잖아요. 비슷한 문화가 있나요?

일단은 회식 문화가 있죠, 그런데 그냥 해피아워라고 해요. 그냥 맥주 먹고 저녁 먹고 가는 분위기. 당연히 참석 안해도 되고요. 좀 더 라이트한 느낌이죠.


“그러니까 디자인의 기회가 공평하다는 느낌으로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오피스에 대해서 조금 더 자랑하고 싶은거 있나요?

제가 제일 낮은 직급,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모든 사람을 되게 평등하게 대해줘요. 이게 디자인 같은 것에서 저한테 다 맡기는 것도 있고 그래요. 연차가 낮으니까 이것만 해, 그런게 많지 않다고 느껴져요. 당연히 테크닉에 대한 지식은 제가 적지만, 만약에 어떤 부분에 대해서 디자인을 잘 하면 테크닉은 끌어주는거죠. 그러니까 디자인의 기회가 공평하다는 느낌으로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회사에서 아시안 비율은 어때요? 유색인이랑?

백인들이 많긴 한데, 아시안과 유색인 비율이 한 50%정도? 되는 거 같아요.

그렇군요. 다양성, 너무 부러운 부분이에요. 그럼 시애틀. 시애틀의 퀴어 프렌들리라고 해야할까요? 시애틀은 어떤 편이에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에 하나에요. 어쩌면 뉴욕보다도요. 미국 전역에 많겠지만 게이 프렌드리 레스토랑이 많아요. 그러니까 슬로건으로 그걸 내세우는거죠. 플래그도 글어놓은 가게들이 굉장히 많고, 횡단보도도 레인보우인 특정 지역들도 있고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너무 끼부리면서 다니면 눈치 보이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오히려 그걸 더 좋아하는 분위기에요. 게이스러운 걸 숨기지 않고 농담으 했을 때 굉장히 재밌게 받고요. 아, 그리고 회사에서 쓰는 업무 어플에 프라이드 채널이 따로 있어요. 그러니까 단톡방이라고 해야할까요? 그 중에 프라이드 채널이 따로 있어서, 여러 도시의 퀴퍼 소식도 공유를 해주고, 퀴어 관련한 소식들을 전해주는 그런거죠.

그러면 커밍아웃을 했나요?

명확하게 얘기를 하면, 한국인이 인볼빙 되어 있는 곳에선 안하고, 다른 곳에서는 했어요. 그리고 한국인인데 교포다? 그러면 오케이.

한인교회를 열심히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제가 사실은 최근에 한인 교회를 떠났어요. 목사님한테 직접 얘기했어요. 예배 끝나고 한 7-8명이서 모임을 하거든요. 그런데 몇번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들이 그 자리에서 오간거에요. 그게 좀 몇 번 나오다 보니까, 이제 목사님한테 얘기하게 된거죠. 모든 사람을 사랑해줘야 하는 공간인데 이게 뭐지? 싶은거죠. 그래서 목사님한테, 제가 사실은 동성애자다. 하면서 얘기했어요. 원래는 제가 한국사람한텐 안하는데, 목사님이니까 알아야 할 거 같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수 있다. 얘기를 했죠. 그러면서 나왔어요. 그래서 지금은 한인 교회 아닌 현지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지 교회도 엄청 나게 받아들이는 느낌은 또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교회를 탐방하고 있기도 해요. 아 그리고 한국에서도 LGBTQ 교회를 찾게 됐어요.

그렇죠, 몇몇 곳들 있어요. 저도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이게 두 가지 정체성이 당연히 공존할 수 있잖아요? LGBTQ이면서 크리스천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게 절대로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느낌이 있죠. 그런데 JOON님도 그렇고 이미 존재하는걸요.

맞아요. 그리고 정말 좋았던 경험이, 미국 교회에서 남자 커플이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게 너무 보기 좋았어요. 파티에 한번 초대를 받아서 얘기를 나눴는데, 결혼 생활을 한 15년 정도 했고 같이 교회를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 원래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아 저런 사람 만나면 결혼 생활 하고 싶겠다.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럼 연애를 할 때도 크리스쳔을 만나고 싶어하시나요?

바뀌었어요. 원래는 상관이 없었는데, 지금은 맞아요.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게이 남자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다 파티나 다니지. 그런데 만났어, 그런데 또 외형적인 것도 맞아야하고, 성격도 맞아야 하고, 저는 거기에 장벽이 하나 더 있는거니깐 힘들어요.

그 장벽 없어도 힘든 사람도 많더라고요. 다들 장벽은 다양하니까…
그러면, 이제 게이 문화? 향락? 끼문화? 라고 해야할까요? 그런건 어떤가요?

저는 진짜 잘 안 즐기는 편이에요. 미국 기준에서요. 저는 정말 놀란게, 크루징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여기에서 말하는 크루징은 진짜 크루즈에요. 유람선에 온갖 게이들이 다 모여서 몇박 몇일 동안 술 마시고 약하고 담배 피고, 또 섹스도 하고 계속 쳇바퀴처럼 돌리는거에요. 진짜 배에서 육지를 떠나서 바다에서요. 스파도 있고, 수영장도 있고. 그걸 한 1-2주동안 떠나요. 그러면 돌아오면 탑이며 바텀이며 각각 다 헐어서 온다는 얘기도 있어요.

가보고 싶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하고 그러네요 저는. 오픈릴레이션쉽은 어때요? 드라마 보면 꼭 나오는 얘기인거 같고, 한국에서도 요즘 많이 보이는 거 같아서요.

굉장히 많아요. 틴더에 괜찮은 애들은 다 오픈이다 그런 얘기도 많죠. 결혼하고 둘다 오픈 하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서면 오픈하는 사람도 있고요. 사실 바람인 것도 있는거죠. 전 아직 조선년인가봐요, 이게 참 힘들어요. 그리고 이건 좀 케이스가 적은데, 트러플이라고도 있어요. 트리플이랑 커플이 합쳐져서 트러플. 세명이서 사귀는거죠.

폴리아모리인거네요. JOON님은 완전 모노가미인거고요. 그럼 약간 오픈 안하는 사람에 대해서 재미없다, 이런 분위기도 있나요?

그렇진 않아요. 그건 또 그들만의 리그기 때문에요. 서로의 밸류가 다르니까 신경 쓰진 않아요. 그리고 어플도 되게 다양해요. 펀 섹스를 위한 것도 있고, 좀 더 시리어스한 관계나 장기연애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어플도있고요.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것도 있고 그래요. 그리고 미국은 프렙(PrEP)이 공짜에요. 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요. 한국은 되게 비싸잖아요.

맞아요. 그리고 진단 안받으면 구하지도 못해요. 내가 진단을 받거나, 파트너가 진단을 받거나 그래야 살 수 있더라고요. 일반적인 루트로는.

프렙이 매일 먹어야 하잖아요. 3개월마다 프렙도 주고, STD 검사도 같이 해주니까 좋아요.

아까 말씀해주셨던 거 같은데, 미국에서 계속 살고싶다고 하셨어요. 지금 비자는 어떤 상태에요?

아직 학생 비자에요. 건축은 스템이라는게 있는데 이게 3년동안 미국에서 일 할 수 있는거에요. 그런데 이 3년동안 워킹 비자를 지원을 할 수 있거든요. 근데 이게 복권이에요. 1년에 한번씩 뽑는데, 저는 세 번의 기회중에 한 번의 기회는 안됐어요 .이제 두 번의 기회가 있는거죠. 아니면 시민권자 있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 하는거죠. 뭐 다른 방법도 있다고는 하는데, 가능성이 많이 떨어져서요. 그런데 또 안되면 캐나다로 넘어가서 거기서 일 하면서 다시 미국 워킹 비자를 노릴 수는 있죠.


“뭐 어쩌겠어요. 힘내서 잘 살아야지. 다들 살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쉽진 않네요. 미국에 어쨌든 지금은 사는 사람으로써, 한국에 게이들, 특히 지아키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사실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지도 않았기도 하고 뻔한 말이기도 한데요.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말인데 이게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나라 자체가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에서 저희가 쉽게 바꿀 수는 없겠지만, 뭐 어쩌겠어요. 힘내서 잘 살아야지. 다들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 지아키 사람들한테 또 하고 싶은 말은,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싶으면 시민권자 있는 남자를 만나라. 이거에요. 어중간하게 워킹비자 있는 애들 만나지 말고, 확실하게 그린카드를 줄 수 있는 미국 시민권자를 만나라. 시민권자만 만나요.

인터뷰 진행 및 사진:정민        일러스트:호생